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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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이란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 그 어떤 아바타도 그대에게 이걸 줄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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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이란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 그 어떤 아바타도 그대에게 이걸 줄 순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시선은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고쳐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걸 읽고 있는 그대 말입니다. 그대는 고쳐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가 시점 수준에서 인지하는 모든 것—그것은 고쳐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녹인다(용해한다)’는 단어를 쓴 적이 있는데, 이는 고치는 것과 다릅니다. 바꾸는 것과도 다릅니다. 뭔가를 ‘녹임’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햇살을 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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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을 이야기꾼의 눈으로 바라보기. 노려보는 거 아님. 어색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아님. 바라보기임.
실전

시점을 이야기꾼의 눈으로 바라보기. 노려보는 거 아님. 어색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아님. 바라보기임.

현재의 “추천 자료” 페이지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영성 유튜브 채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습니다.: 심리학, 생물학, 양자 역학, 종교, 영성... '나'에 접근하는 길은 많습니다. 레이블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 접근할 때의 따스함입니다. 다른 이들이 '나'의 객관적, 논리적, 합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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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에 나타난 문제들의 목록을 작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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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에 나타난 문제들의 목록을 작성하세요.

원치 않는 시점 특화를 용해하는 과정은 묘사하기에 간단합니다: 1. 이야기꾼에게 문제를 가져간다. 2. 이야기꾼이 그대와 함께 그 문제를 바라본다. 3. 문제가 녹아나간다. 왜냐하면 그녀가 바로 그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이야기꾼은 그대다.그대는 그저 잠시 아바타와 좀 더 진하게 동일시되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스스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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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 탈특화가 의식적 특화보다 더 쉽습니다.
시점

의식적 탈특화가 의식적 특화보다 더 쉽습니다.

제 관찰과 경험에 따르면, 초반에는 원치 않는 영감으로부터의 의식적 탈특화가 원하는 영감으로의 의식적 특화보다 더 쉽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자면, ‘나는 머저리다’로부터 의식적으로 탈특화하는 것이 ‘나는 천재다’로 의식적으로 특화하는 것보다 쉽단 뜻입니다. 왜냐하면, 시점이 ‘나는 머저리다’로 가득하면 새로운 영감이 페이지에 닿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흰 페이지에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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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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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는” 느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미 주요 시점 특화를 몇 개 고려/승낙하신 상태입니다. 이를테면: * 나는 이 아바타이지만, 또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야기이자 그 안의 전부다). * ‘외부’ 환경은 내 아바타와 그 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 서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지만 관찰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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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되고 상대되는 것들의 사용에 대한 추가 내용 + 유용한 시점 특화.
시점

반대되고 상대되는 것들의 사용에 대한 추가 내용 + 유용한 시점 특화.

지금까지 이 세계관의 다양한 측면을 다뤘습니다. 몇 가지 핵심을 요약하고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 아바타에게는 무언가가 부정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무언가에는 부정성이 허락되어야 한다. * 동시에, 이야기꾼은 아바타의 모든 것을 필연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 또한 아바타 수준에서조차, 부정성이 없었더라면 아바타는 긍정성을 어떻게 경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바타가 부정적이라고 받아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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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에게 분개한 상태는 좋은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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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에게 분개한 상태는 좋은 시작점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이야기꾼이라는 아이디어가 분노, 좌절, 억울함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대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간주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매우 좋은 시작점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는, 처음에 '이야기꾼의 눈' 같은 세계관을 접할 때 우리가 택하게 될 확률이 높은 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가 소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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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을 띠는 아바타 세상.
시점

상대성을 띠는 아바타 세상.

지금까지의 포스트들에도 불구하고, 혹은, 어쩌면 그 포스트들에 들어 있는 내용 때문에, 이야기꾼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것들 중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이야기꾼은 아바타를 필요로 한다. 아바타가 든 이야기 없이는 이야기꾼이 이야기꾼일 수가 없다. * 우리에게 곤경이 닥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이야기꾼이 누구/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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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야기꾼은 그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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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야기꾼은 그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다음은 우리가 이야기꾼에 대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심지어, 알아야 할 유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꾼은 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대의 이야기꾼은 그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각각의 이야기꾼들은 우리 각각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이 이유에서 이 세계관을 '이야기꾼의 눈'이라고 부르기로 한 겁니다. 제가 아는 단어 중,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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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뭣 하러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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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뭣 하러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건가?

왜 그냥 우리 모두가 이야기 속에서 깨어나서는, 이야기꾼의 성질로 돌아가고, 이에 따라, 말하자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왜 이야기꾼은 아바타를 이야기 내의 어려움 속으로 보낼 필요가 있는가? 다른 말로 하자면, 이야기가 이러면 왜 안 되나?: 옛날 옛적에, 날고 싶어 하는 여자아이가 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날 수 있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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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은 아바타와 이야기꾼이 만나는 곳입니다.
시점

시점은 아바타와 이야기꾼이 만나는 곳입니다.

시점은 아바타와 이야기꾼이 만나는 곳입니다. 시점이 중간입니다. 소설에서 캐릭터와 소설가가 시점, 즉, 중간에서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점이란 것은 캐릭터에게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앞선 포스트들에서 언급되었듯이, 재미를 위해서는—캐릭터에게도, 소설가에게도—어느 정도의 특화됨이 필요한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점이 팽창할 가능성은 늘 있지만, 그러한 가능성들이 늘 직접적으로 경험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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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과도, 아바타와도 동일시하기 + 내면과 외면.
영감

이야기꾼과도, 아바타와도 동일시하기 + 내면과 외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쓸 수 있는 것은 이야기꾼입니다. 우리가 이야기꾼과 동일시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힘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대의 시점은 강력합니다."에서 언급했듯이, 이야기꾼은 아바타를 필요로 합니다. 아바타 없는 이야기꾼에게는 빈 페이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빈 페이지는 순수한 가능성입니다: 존재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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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영감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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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영감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영감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우리가 이야기 속에 있다는 영감 말입니다. 다만 이론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영감은 제게서 온 게 아닙니다. 저, 한아임 말입니다. 한아임은 이 포스트를 그녀의 (저의) 아바타를 통해 쓰고 있습니다. 아바타 세상에서 그녀의 (저의) 말은 그녀의 (저의) 지적 재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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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것이 아닌,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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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것이 아닌, 모델.

모든 용어는 설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어가 따로 존재한다고 해서 손목을 팔꿈치로부터 절단하면 안 되겠죠. 우리가 원하는 건 제대로 기능하는 팔 전체입니다. 이야기꾼의 눈 세계관 속의 겹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야기꾼 * 시점 * 아바타 * 몸 + 마음 이 목록의 그 무엇도 다른 것보다 더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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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시점은 강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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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시점은 강력합니다.

시점이 스스로 영감을 생성할 수 없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혀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시점이 우리가 왜 무언가를 원하고 왜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는 점은 꽤 유용합니다. (참고로,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은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같습니다. 시점은 이를 모를지 몰라도, 이야기꾼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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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 수준의 자유 의지 문제.
영감

시점 수준의 자유 의지 문제.

우리는 곧 우리가 상상하는 것(우리의 시점이 집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아바타 세상에서는 각각의 개체 사이에 구분이 존재합니다. 시점 자체는 어디로든 언제로든 가서 모든 것을 동등한 무게/견고함/타당성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시점은 어떤 요소들은 특정 아바타들과 더 긴밀하게 연관 짓기에, 각 아바타는 아바타 세상에서 각각 다른 개체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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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에서 가져온 관련 인용 + 레이블에 대하여.
참고

'공간의 시학'에서 가져온 관련 인용 + 레이블에 대하여.

언덕을 ‘오르는’ 길을 역동적으로 추체험할 때, 나는 그 길 자체가 근육을 지녔었다고, 아니 그보다는, 역逆근육을 지녔었다고 지극히 확신하게 된다. 파리에 있는 내 방에 있자 하면, 길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좋은 운동이 된다. 이 페이지를 쓰고 있는 동안, 나는 산책해야만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된 느낌이다. 분명히 집 밖으로 나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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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아닌 것이 됨을 경험하기.
실전

아바타 아닌 것이 됨을 경험하기.

이론 한 조각을 쓸모없어지게 만들면서도 더욱 구체적이게끔 하는 데에는 자기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만 한 게 없습니다. 아바타 세상 너머의 '나.' 포스트를 읽고서 만약 그대가 아바타 아닌 것이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고 믿는다면, 그런데 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아래에 안내된 연습을 해보기를 제안합니다. 경험 1.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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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진짜'의 구분에 대하여.
마음

'상상'과 '진짜'의 구분에 대하여.

‘이야기꾼의 눈’ 세계관에서, ‘상상’과 ‘진짜’의 구분은 잘해야 모호하고,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이런 겁니다: 우리는 팔의 여러 부분에 대해 여러 단어를 씁니다. 손목, 팔뚝, 팔꿈치,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손목은 어디서 시작하고 팔뚝은 어디서 끝납니까? 팔뚝은 어디서 시작하고 손목은 어디서 끝나나요? 마찬가지로, 팔뚝과 팔꿈치는요? 이 세계관의 용어들 역시 대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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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세상 너머의 '나.'
시공간

아바타 세상 너머의 '나.'

“내 몸 밖의 ‘나’?” 포스트의 가장 신기한 점은 그대가 기절한 상태라면 미술관에 있지 않다고 결론지은 것도 아니고, 그대가 마우이, 산토리니, 카프리에 대해 생각할 때 (그대의 대답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술관에 있지 않다고 결론지은 것도 아닙니다. 가장 신기한 점은 그대가—그대 몸으로 어디에 앉아 있었든지 간에—이 허구의 미술관 직원을 선뜻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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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용어 몇 개.
관리

첫 용어 몇 개.

이 세상에 사전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는, 그것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단어들이 늘상 다른 의미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야기꾼의 눈’의 세계관에서 특정하게 사용하기 위한 첫 용어 몇 개를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 몸: 아바타계에서 마음을 담는 그릇 * 마음: 감정, 생각, 느낌 * 아바타: 몸 & 마음 * 시점: 아바타가 일상적 의식으로 다다를 수 있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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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공간, 그리고 시점.
시공간

시간, 공간, 그리고 시점.

시간과 공간은 하나인데, 이는 시간의 움직임이 곧 공간의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대부분의 세계들에서는—이를테면, 아바타의 세계에서는—시간 흐름 없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공간에서의 움직임 없이 시간이 흐르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릴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이 흐르며 공기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기의 움직임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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