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밖의 '나'?

내 몸 밖의 '나'?

케이스 1.

당신이 텅 빈 미술관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좀 있으면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100명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천장이 높으며 소리가 울릴 정도의 이 거대한 공간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인공조명을 껐습니다. 하지만 흰 벽을 따라, 천장 맨 꼭대기 근처에 난 길고 납작한 창문들을 통해서는 지금 지는 중인 태양의 자연광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자연광이 모네며 마네처럼 예쁜 프랑스어 이름을 지닌 예술가들의 인상파 그림들을 주황, 넘쳐나는 따스한 주황으로 아름답게 적십니다.

가을바람이 살살 불어 들어옵니다. 수많은 방문자들의 향수며 헤어스프레이며 보디로션으로부터 온 다양한 향들은 이미 한참 전에 소멸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좀 있으면 문을 닫을 시간이고, 당신은 혼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웨터날씨용 스웨터를 입고 참으로 아늑하며, 참으로 만족합니다.

자.

당신이 이 미술관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같은 질문에 제가 했을 대답에 기반해 당신의 대답을 유추해 보자면: “제가 미술관에 신체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제 몸이 미술관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 몸이 있는 그곳이 우리가 있는 곳이죠.

당연하게도.


케이스 2.

이제 이런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당신은 여전히 참으로 아늑하며, 참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이미 수천 번의 저녁에 텅 빈 미술관에 이렇게 서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일한다고 해봅시다. 인공조명을 끄고, 가을바람을 들이기 위해 창문들을 연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이 일을 했을 때는 그 행위에 어떤 로맨스가 깃들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똑같은 업무 일과를 수천 번이나 마친 후에는, 모네며 마네의 걸작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지녔던 최초의 매혹이 대부분 상실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아늑하며 만족하는 이유는, 이렇게 텅 빈 일터의 한가운데에 서서는 다음 휴가 목적지 후보들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딘가 바닷가에 있는 곳에 가고 싶습니다. 어딘가 따뜻한 곳요. 스웨터를 입기 좋은 따뜻한 가을날 정도가 아니라, 열대 혹은 지중해스럽게 따뜻한 곳 말이죠. 마우이, 산토리니, 카프리 같은 곳이 좋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곳들은 전부 기분 좋은 ‘ㅣ’ 소리로 끝이 납니다.

다시 한번 질문을 고려해 봅시다.

당신이 이 미술관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같은 질문에 제가 했을 대답에 기반해 당신의 대답을 두 가지 버전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1. 제가 미술관에 신체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제 몸이 미술관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즉, 아까와 대답이 같습니다.

#2. 저는 미술관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곳에 있어요. 마우이, 산토리니, 카프리에요.


케이스 3.

이건 어떤가요?

해변스러운 장소에서 보낼 미래의 휴가를 떠올리며, 당신은 갑자기 기절합니다.

이제는 당신이 이 미술관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같은 질문에 제가 했을 대답에 기반해 당신의 대답을 유추해 보자면, 아마 이런 방향일 겁니다: “모릅니다. 거기에 있다는 걸 몰라요. 실은, 아마 저는 아무것도 모를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기절했고, 따라서 의식을 잃었으니까요. 저는 아무 데에도 있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참 신기한 현상 아닙니까?

우리는 어떤 때는 몸의 위치를 ‘나’의 위치와 동일시합니다. 케이스 1에서처럼요.

하지만 케이스 3을 보자면, 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케이스 3에서는 마음이 몸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의식을 잃자마자, 갑자기 우리는 우리가 미술관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미술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누워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떠나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케이스 2가 좀 까다롭죠. 어떤 이들은 몸이 미술관에 있기 때문에 그들도 거기 있다고 말할 테고, 다른 이들은 마음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다른 데에 있다고 말할 겁니다. 어쩌면 동일 인물이 때로는 자기가 미술관에 있다고 말하고, 다른 때에는 자기가 미술관에 있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몸이 마음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다고 일단은 가정해 봅시다.) 하지만 케이스 2조차 이 현상들의 신기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때로는 ‘나’를 몸과 동일시했다가도 다른 때에는 ‘나’를 다른 것과 동일시하는 현상들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전환을 완벽하고도 자연스럽게 수행합니다.


세계관 태그는 이 순서대로 읽는 게 제맛입니다. 뒷선 내용에 앞선 내용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