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세상 너머의 '나.'

아바타 세상 너머의 '나.'

“내 몸 밖의 ‘나’?” 포스트의 가장 신기한 점은 그대가 기절한 상태라면 미술관에 있지 않다고 결론지은 것도 아니고, 그대가 마우이, 산토리니, 카프리에 대해 생각할 때 (그대의 대답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술관에 있지 않다고 결론지은 것도 아닙니다.

가장 신기한 점은 그대가—그대 몸으로 어디에 앉아 있었든지 간에—이 허구의 미술관 직원을 선뜻 ‘그대’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한 가지 버전만이 아니라, 여러 버전을 말입니다. 그대의 아바타는 그 포스트를 그대의 몸을 이용해서 그대의 휴대폰이나 그대의 데스크톱으로 읽는 중이었습니다. 그대의 몸은 아마도 미술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거고요. 혹시나 그대의 몸이 마침 노을이 지고 있는 텅 빈 미술관에 떡하니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대는 그대의 아바타 몸이 아닌 또 다른 그대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하나의 순간에 이쪽 아니면 저쪽을 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둘 다 동시에 될 수 있었습니다.

시점은 그대 아바타 너머의, 보다 큰 그대를 아우릅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고려해 보십시오. 제가 “상상해 보십시오”라고 했을 때 벌어진 일을 부디 진정으로 고려해 보세요.

그대는 그 미술관 직원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진짜로’ 그 미술관 직원이 된 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미술관 직원이 되었다고 ‘그저 상상했을 뿐’이라고, 따라서 그것은 ‘진짜’는 아니라고요.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한아임 씨, 당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전부 진.짜.로. 우리라는 말을 하는 겁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같은 말은 늘상 쓰이잖아요. 우리가 매번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네. 바로 그 말을 하는 겁니다.

‘나’는 몸에 제한될 필요가 없습니다. 몸이란 우리가 아바타 세상에 있는 한 ‘나’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제한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한적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십시오. 그대의 시점은 얼마나 본능적으로 그대의 몸으로부터 미술관 직원의 상상된 몸을 찾아갔습니까? 또한 시점이 그대 자신의 과거 몸이나 그대 자신의 미래 몸으로 얼마나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찾아가는지도 고려해 보십시오. 이러한 과거나 미래의 몸들은 아바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나’로 보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과거/미래 몸들과 미술관 직원의 상상된 몸 사이에 진짜 차이는 없습니다.

소설 속에서, 시점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방식과 시점이 다른 캐릭터 혹은 배경 혹은 의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진짜 구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정확히 동일한 문자 체계가 주인공의 묘사에도, 다른 요소들의 묘사에도 쓰입니다. 정확히 동일한 폰트가 쓰입니다. 독자와 저자는 특별한 의자에 앉아야지만 주인공에 대한 부분이나 다른 요소들에 대한 부분들을 쓰거나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전부 동일하게, 페이지에 배열된 글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점이 우리의 아바타 세상에서 인식하는 모든 것은 전부 동일하게 시점의 인식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그 포스트를 읽을 당시, 그대는 인간인 그 미술관 직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포스트 안의 다른 모든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대는 노을의 주황에 흠뻑 젖은 텅 빈 미술관이었습니다. 그대는 모네와 마네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대는 또한 이제는 부재하는 향수, 헤어스프레이, 보디로션의 향이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그대가 공간을 이동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간 내에서 시간 이동 역시 했다는 말입니다. 그대는 한때 존재했던 것을 상상하는 능력을 통해 이제는 부재하는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 있습니다. 그대는 또한 미술관 직원의 느낌과 생각이었습니다. 그대는 그 사람의 아늑하며 만족한 자신이었습니다. 그대는 ‘이제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대는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휴가에 대한 설렘이었습니다.


이렇기에 신발끈이며 선크림이며 안경만 등장하면서도 어떤 인간 캐릭터들보다도 우리 삶의 이야기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신발끈이며 선크림이며 안경은 인간이 아니지만 우리 시점의 일부이며, 시점은 우리가 일상적 의식으로 의식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우리가 3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귀걸이를 집어 들 때, 그 물건은 우리의 시점을 통해 할머니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할머니 살아생전에 대한 우리의 기억, 혹은 심지어 할머니 당신의 기억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진짜이게끔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기에 실체가 있다고들 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우리는 할머니가 되고, 할머니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되고, 할머니 기억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됩니다.

귀걸이가 인간이 아니며 ‘진짜’인 방식으로 기억을 ‘담을’ 수 없다는 점은 상관이 없습니다. 담기를 행하는 것은 귀걸이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의 시점이 합니다.


세계관 태그는 이 순서대로 읽는 게 제맛입니다. 뒷선 내용에 앞선 내용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