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진짜'의 구분에 대하여.

'상상'과 '진짜'의 구분에 대하여.

‘이야기꾼의 눈’ 세계관에서, ‘상상’과 ‘진짜’의 구분은 잘해야 모호하고,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이런 겁니다:

우리는 팔의 여러 부분에 대해 여러 단어를 씁니다. 손목, 팔뚝, 팔꿈치,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손목은 어디서 시작하고 팔뚝은 어디서 끝납니까? 팔뚝은 어디서 시작하고 손목은 어디서 끝나나요? 마찬가지로, 팔뚝과 팔꿈치는요?

이 세계관의 용어들 역시 대략 그러합니다. 설명의 목적에는 유용하지만, 진짜를 말하자면, 제대로 기능하는 팔을 갖는 경험보다 나을 리는 없습니다. ‘상상’과 ‘진짜’ 모두가 들어 있는, 제대로 기능하는 세상을 경험하는 것보다 나을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제대로 기능하다’는 외부 관찰자에게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에게, 그대의 세상에서, 그대의 세상은 제대로 기능합니까? 그대가 원한다/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것이 곧 그대가 되도록 허용하는 방식인 쪽이 아무래도 좋을 텐데, 그러합니까?


요컨대, 상상되지 않은 것보다 덜 진짜인 것을 가리키려고 ‘상상’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근본적으로, 상상되지 않은 것이란 건 없습니다. 따라서 상상과 진짜를 구분하기란 헛됩니다. 진짜로 생각을 해 보면, 처음에는 상상되었을 ‘뿐’이었으나 나중에는 진짜가 ‘된’ 것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에는 상상입니다. 그것이 아바타 세상에서 ‘진짜’가 될 때까지는요. 사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이들은 자신들에게는 그것이 진짜였다고 말할 겁니다. 나머지 세상이 그것을 진짜라고 보기 전부터요. 이는 만질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아이디어, 예를 들자면 소설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또한 영화 같은 것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시나리오 형태(소설처럼 글자로 구성된 형태)로 존재하다가 만질 수 있는 배우들로 가득한 만질 수 있는 영화 세트로 둔갑하고, 그다음에는 또 만질 수 없는 스트리밍 데이터로 둔갑합니다. 또한 건물 같은 것도 있습니다. 건물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아직 그려지지 않은 청사진이었다가 청사진이 되고,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살고 죽을 수 있는 진짜 구조물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진짜입니까? ‘진짜’인가요?

계속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그대가 스스로 답을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일단은, 이 말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바타 세상의 ‘진짜’인 것들(실체가 있는 것들)조차 상상으로 시작했으니, 그보다 덜 실체적인 것들은 분명 상상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꽤 간단합니다:

  • ‘진짜 세상’에서 가능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모든 관념은 상상입니다.
  • ‘진짜 세상’에서 가치 있거나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모든 관념은 상상입니다.
  • ‘진짜 세상’에서 공평하거나 불공평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모든 관념은 상상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상상’이 ‘진짜’보다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상상된 관념들은 그것들을 믿는 이들에게 매우 진짜입니다. 하지만 그 관념들은 불변의 것이 아니고 ‘늘’ 거기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실체가 있지 않습니다. 아바타 세상에서, 늘 거기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결정’으로부터 나온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계관 태그는 이 순서대로 읽는 게 제맛입니다. 뒷선 내용에 앞선 내용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