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셋 시점이란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 그 어떤 아바타도 그대에게 이걸 줄 순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시선은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고쳐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걸 읽고 있는 그대 말입니다. 그대는 고쳐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가 시점 수준에서 인지하는 모든 것—그것은 고쳐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녹인다(용해한다)’는 단어를 쓴 적이 있는데, 이는 고치는 것과 다릅니다. 바꾸는 것과도 다릅니다. 뭔가를 ‘녹임’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햇살을 얼음에
마인드셋 “그냥 아는” 느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미 주요 시점 특화를 몇 개 고려/승낙하신 상태입니다. 이를테면: * 나는 이 아바타이지만, 또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야기이자 그 안의 전부다). * ‘외부’ 환경은 내 아바타와 그 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 서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지만 관찰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마인드셋 이야기꾼에게 분개한 상태는 좋은 시작점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이야기꾼이라는 아이디어가 분노, 좌절, 억울함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대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간주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매우 좋은 시작점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는, 처음에 '이야기꾼의 눈' 같은 세계관을 접할 때 우리가 택하게 될 확률이 높은 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가 소설 속에서
마인드셋 그대의 이야기꾼은 그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다음은 우리가 이야기꾼에 대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심지어, 알아야 할 유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꾼은 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대의 이야기꾼은 그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각각의 이야기꾼들은 우리 각각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이 이유에서 이 세계관을 '이야기꾼의 눈'이라고 부르기로 한 겁니다. 제가 아는 단어 중, 이것
마인드셋 애당초, 뭣 하러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건가? 왜 그냥 우리 모두가 이야기 속에서 깨어나서는, 이야기꾼의 성질로 돌아가고, 이에 따라, 말하자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왜 이야기꾼은 아바타를 이야기 내의 어려움 속으로 보낼 필요가 있는가? 다른 말로 하자면, 이야기가 이러면 왜 안 되나?: 옛날 옛적에, 날고 싶어 하는 여자아이가 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날 수 있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마인드셋 지금까지의 요약. 이제 세계관의 첫 번째 파트를 다 다뤘습니다. 거기에 “이 가능성을 고려해 보십시오.”라는 제목을 붙였고요. 요약하며 더 명확하게 하자면: '나'란 우리 몸의 다양한 부분으로 안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나 가슴 부분으로요. 뿐만 아니라, 이 '나'는 반드시 몸과 연관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전혀요. 실은,
마인드셋 이제 이 영감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영감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우리가 이야기 속에 있다는 영감 말입니다. 다만 이론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영감은 제게서 온 게 아닙니다. 저, 한아임 말입니다. 한아임은 이 포스트를 그녀의 (저의) 아바타를 통해 쓰고 있습니다. 아바타 세상에서 그녀의 (저의) 말은 그녀의 (저의) 지적 재산이고
마인드셋 실제 그것이 아닌, 모델. 모든 용어는 설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어가 따로 존재한다고 해서 손목을 팔꿈치로부터 절단하면 안 되겠죠. 우리가 원하는 건 제대로 기능하는 팔 전체입니다. 이야기꾼의 눈 세계관 속의 겹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야기꾼 * 시점 * 아바타 * 몸 + 마음 이 목록의 그 무엇도 다른 것보다 더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이들은
마인드셋 그대의 시점은 강력합니다. 시점이 스스로 영감을 생성할 수 없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혀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시점이 우리가 왜 무언가를 원하고 왜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는 점은 꽤 유용합니다. (참고로,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은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같습니다. 시점은 이를 모를지 몰라도, 이야기꾼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